만석 · 아버지의 카세트테이프
연습대본 · 드라마 · 남성 / 60대 이상 · 감정선 웃음 → 분노 → 슬픔 → 눈물 → 절망
전체 대사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지연아, 내 목소리 들리냐?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놔두고 웬 청승이냐고 하겠지. 아비도 안다. 아는데... 내일 네 화장한 얼굴 보고는 도저히 이 말이 안 나올 것 같아서, 구석에 박혀있던 이 고물 기계를 굳이 꺼냈다. 내일이네. 우리 딸 시집가는 날. 아까 네가 웨딩드레스 사진 보내준 거... 봤다. 참말로 예쁘더라. 니 애미 젊었을 때랑 똑같애. 눈 크고, 웃을 때 보조개 폭 파이는 거. 어릴 때 네가 내 목마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면, 동네 사람들이 다 부러워했는데. 저리 예쁜 딸내미 둬서 만석이는 세상을 다 가졌다고. 근데 세상을 다 가졌으면 뭐 하냐. 지키는 법을 몰랐는데. 내 딴에는, 남들처럼 떵떵거리고 살게는 못 해줘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밤낮없이 다리미질만 해댔다. 뜨거운 김에 손등이 다 데여도, 그깟 거 찬물에 쓱 한 번 씻고 말았어! 돈 벌어야 하니까! 내 새끼 밥 안 굶기려고!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네가 중학교 때였나, 그림 그리고 싶다고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내가 이 못난 손으로 네 스케치북 북북 찢어버렸지. 붓 장난할 시간 있으면 나가서 기술이나 배우라고, 이 애비처럼 평생 남의 옷 찌든 때나 빼면서 살고 싶냐고! 내가... 내가 미친놈이지! 방구석에서 숨죽여 우는 널 보면서, 내 속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는데... 이 병신 같은 입구멍에서는 끝까지 모진 소리만 나가더라. 미안하다는 그 세 글자가, 왜 그렇게 목구멍에 걸려서 안 튀어나오는지. 못난 애비 자격지심에... 네 가슴에 대못만 박았어. 미안하다, 지연아. 내가 진짜... 진짜 잘못했다. ...아이고, 내일 혼주석에 앉아야 할 놈이 눈이 다 퉁퉁 부었네. 사돈어른 보기에 민망해서 어쩌냐. 지연아. 그 서방, 참 착하더라. 나같이 욱하는 성질도 없고, 네가 무슨 말만 하면 꿀 떨어지게 쳐다보는 게... 넌 평생 눈물 흘릴 일은 없겠더라. 다행이다. 참말로 다행이야. 이제 애비 걱정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훌쩍 날아가거라. 혹시라도 살다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와. 네 옷에 묻은 얼룩, 애비가 다 빼줄 테니까. 지연아. 내 딸 지연아. ...사랑한다. 평생, 한 번도 말 못 해서 미안해. 내 목숨보다 널 사랑한다. 잘 살아라, 내 새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