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 · 마지막 하이 노트
연습대본 · 드라마 · 여성 / 30대 · 감정선 죄책감 → 슬픔 → 분노
전체 대사
민준이... 아니, 작곡가님을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낡은 동아리 방이었어요. 퀴퀴한 먼지랑 삐걱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전부인 곳이었죠. "누구세요?" 그게 첫마디였어요. "노래하러 왔는데요." 이게 제 대답이었고. 그렇게... 우리의 15년짜리 뮤지컬이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민준이의 재능을 부러워했지만, 저는 그 애의 집요함을 사랑했어요. 음표 하나, 쉼표 하나에 자기 영혼을 새겨 넣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저는, 그 영혼을 목소리에 담아내는 사람이었고요. 우린... 완벽한 한 팀이었죠. 적어도, 마지막 그날 전까지는요. "이 파트만 수정해 줘. 딱 한 키만 낮추자. 제발." 기억나, 민준아? 우리 마지막 대화. 우리의 걸작, '에필로그'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그놈의 '하이 F'. "안돼. 이 곡의 심장이야. 이 음이 무너지면, 모든 감정이 다 죽어." "감정은 내가 만들게! 배우는 나잖아! 이 음 하나 때문에 전체를 망칠 순 없어. 대중들은 너무 높은 음 안 좋아해. 불안해한단 말이야!" 네 눈빛이 어땠는지 알아? 날... 날 무슨 배신자처럼 쳐다봤어. 자기 예술을 팔아먹으려는 속물. 네 순결한 음악에 때를 묻히는 장사치. 그래서 나도 소리쳤지. "네 음악, 너 혼자 고고하게 끌어안고 죽어버려!" 하고... 그 악보를 네 얼굴에 던져버렸어. 바닥에 흩어지던 오선지들... 네가 밤새 그려 넣은 콩나물 대가리들... 그게 우리가 함께한 15년의 마지막 장면이었어. 미안해... 내가 틀렸어, 민준아. 무서웠어. 사실은... 그냥 너무 무서웠어. 의사가 그랬어. 성대에... 혹이 생겼다고. 이대로 노래하면 영영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그 '하이 F'... 더는 올라가지 않았어. 네가 만들어준 가장 빛나는 별에... 내 목소리가 닿질 않았다고. 자존심 때문에... 너한테 실망시키기 싫어서... 네 완벽한 곡에 흠집을 내는 내 망가진 목소리를 들키기 싫어서... 그래서 그랬어. 네 탓을 하고, 대중 핑계를 대고, 그렇게 널 밀어냈어. 말해야 했는데... 무섭다고, 도와달라고, 네가 내 목소리에 맞춰서 다시 날개를 달아달라고 빌었어야 했는데... 이제 누가... 내 노래에... 멜로디를 붙여주지...? 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내 인생의 지휘자였던 친구, 민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슬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