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 · 미지근한 캔맥주
연습대본 · 드라마 · 남성 / 30대 · 감정선 웃음 → 우울 → 외로움
전체 대사
야. 너 방금 그 한숨, 되게 늙어 보였던 거 아냐? 무슨 나라 잃은 독립군인 줄 알았네. 고작 대리 진급 하나 미끄러진 거 가지고. 울지 마라. 쪽팔리게 다 큰 어른이 새벽 한 시에 놀이터에서. 누가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겠다. 알지. 아는데. 네가 팀장 자리에 앉혀달라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다는 대리 명함 하나 파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뭐 그런 거잖아. 억울할 만하지. 네가 그 회사에 갈아 넣은 야근이 몇 시간인데. 우리 스무 살 때 기억나냐? 여기 이 정글짐 앞에서, 우리 나중에 서른 넘으면 뭐 돼 있을까 얘기했었잖아. 너는 최소 벤처기업 CEO 돼서 포르쉐 끌고 다닐 거라고 했고, 나는 뭐... 영화제에서 상 하나쯤은 받아 있을 줄 알았지. 근데 현실은 어떠냐. 너는 진급 누락됐다고 그네에 앉아서 청승떨고 있고, 나는 그거 위로한답시고 편의점 4캔 만원짜리 맥주 사 와서 생색내고 있잖아. 아까 네가 그랬지. 네 인생이 꼭 남의 드라마에 나오는 엑스트라 1, 2 같다고. 근데 지훈아... (자조적으로 웃으며) 아, 내 이름이지. 근데 인마. 그 평범한 엑스트라로 사는 게, 생각보다 엄청 빡센 거다? 아침 7시에 알람 듣고 일어나서, 지옥철 스크린도어에 얼굴 밀어 넣고, 상사한테 욕먹어도 점심엔 꾸역꾸역 제육볶음 밀어 넣고. 그렇게 하루하루 안 무너지고 버티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포르쉐는 못 타도, 적어도 우리 내일 아침에 출근할 회사는 있고. 이렇게 속상한 날에 동네 슬리퍼 끌고 나와서 맥주 한 캔 깔 친구는 있잖아. 그럼 된 거야. 너무 자책하지 마. 넌 엑스트라치고는 꽤 성실하고, 나름 괜찮은 놈이니까. 아, 미지근해. 야, 빨리 마셔. 김 다 빠졌다. 내일 출근 안 할 거야? 일어나. 들어가자.
